창세기 3장 읽어 보셨습니까?
창세기의 앞부분은 우리가 많이 읽어요.
그런데 창세기12장 넘어가면 이제 지루해지면서 그만두고, 또 다음에 생각나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한번 일독을 해야지 하고 또 창세기 중간 가다가 또 그치고 저도 그런 기억이 많기 때문에 창세기 3장은 우리가 내용을 구체적으로 모르더라도 전체적인 내용은 많이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 창세기3장의 내용이 성경의 다른 곳에서 많은 부분의 지표가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창세기 3장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이후의 성경 말씀이 필요하게 됐다는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창세기 3장은 너무 중요한데, 그 내용을 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그냥 내 생각 속에서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가면 그 내용의 깊이를 못느끼게 되고, 이후의 모든 성경 말씀들이 이론적이고 추상적으로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단어 하나, 자구 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탐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때 비로소 성경 말씀이 실체로서 나의 눈앞에 선명히 보이게 됩니다.
저도 창세기 3장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강해를 듣기도하고 읽어 보기도 했는데 거의 대동소이해요. 우리가 좀더 깊이 말씀을 탐구해 보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램이 있었고요.
창세기3장은 많은 내용들이 같이 엮여 있어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한번 살펴보기로 하죠.
먼저 제가 그림을 한 개 띄우는데 이거 많이 보셨죠.
한국사람이라면 동경해 마지않는 서울대학교 뺐지 입니다.
그런데 왜 서울대학교 뺐지를 제가 보여 드렸을까요?
이 글자 때문입니다. 한번 읽어 보시겠어요?
VERITAS LUX MEA (베리타스 룩스 메아)
이 말은 라틴어로서 VERITAS(베리타스)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LUX(룩스)는 빛입니다. 빛의 밝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룩스를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룩스가 빛이거든요. MEA는 나입니다.
그래서 VERITAS LUX MEA는 “진리는 나의 빛” 이란 뜻입니다.
구한말 정부에서 유능한 법관을 양성하기 위한 법관 양성소로 서울대학교를 설립하게 됩니다. 법관이니까 올바른 판결을 내려야 되니까 이런 모토를 만든 거죠.
이 대학 출신들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아마 조금씩 다를 겁니다. 진리의 개념이 없어져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즈음은 자기가 진리예요. 그게 문제죠. 피조 세계에서 진리는 단 하나입니다.
진리에 대해서 가벼운 입 놀림을 한 사람이 이천년 전에 있었죠.
빌라도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 뭐라 했어요. 진리가 뭐냐? 비꼬았죠.
요한복음 18:38 빌라도가 그분께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창세기3장
창세기 3:1 이제 뱀은 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들의 어떤 짐승보다 더 간교하더라. 그가 여자에게 이르되,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니
여기서 제일 먼저 나오는 단어가 뱀입니다. 이것은 “serpent”로 “snake”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대부분의 뱀이 serpent로 나오는데 사탄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이 뱀은 정확하게 에스겔 28장의 두로왕, 이사야 14장의 루시퍼와 동일한 존재입니다.
이사야 14:12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민족들을 약하게 만든 자야, 네가 어찌 끊어져 땅으로 떨어졌는가! 13 네가 네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하늘로 올라가 내가 하나님의 별들 위로 내 왕좌를 높이리라. 또 내가 북쪽의 옆면들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먼저 서울대학교 뱃지 보여드린 것은 이 이야기 때문에 보여드린 거에요.
“아침의 아들 루시퍼”, 루시퍼를 제대로 알면 빛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창세기 3장 전체 주제에 대해서 우리가 뚜렷하게 알 수 있어요.
루시퍼( Lucifer )는 두 개의 단어가 합쳐진 복합명사 입니다.
“Lux”와 “ferri”가 합쳐진 단어인데 “빛을 나른다” 는 뜻입니다. 루시퍼는 빛을 나르는 천사였던 거에요.
에스겔 28:14 너는 기름 부음 받은 덮는 그룹이라. 내가 너를 그렇게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거룩한 산 위에 있었고 불타는 돌들 한가운데서 오르내리며 다녔도다.
고린도후서 11:14 그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니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느니라.
루시퍼는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며, 빛을 나르는 천사였던 만큼 영광스러운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처럼 가장할 수 있었습니다.
빛의 원천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요한일서 1:5 그런즉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밝히 드러내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분 안에는 전혀 어둠이 없다는 것이라.
계시록 22:5 거기에는 밤이 없겠고 등잔불이나 햇빛이 그들에게 필요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시기 때문이라. 그들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리로다.
“뱀은 들의 어떤 짐승보다 더 간교하더라”.
이 뱀이 첫째로는 가장(위장)을 잘해요.
가장행렬이나, 가장무도회에서 가면을 써죠, 가면은 자기를 숨기는 거에요.
가장이라는 것은 일종의 어떤 목적을 위해 가면으로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는데 상대방에게 자기 본 모습보다 잘 보이게끔 꾸미는 거예요. 이렇게 속임수가 많은 것을 간교하다고 하죠, 자기 자신을 솔직히 들어 내지 않는 거예요. 뱀은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왜 빛의 천사로 가장해서 자신의 몸에서 빛을 내는 것처럼 해야 할 필요가 있었느냐?
화가들이 그린 성화라 하는 그림들 보면 예수님이나 성인이라 하는 사람들 뒤에는 후광을 넣었는데 뒤에서 빛이 있다는 표시가 아니고, 실제로 하나님의 형상을 갖게 되면 몸에서 빛이 나와요.
요한복음 10:35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자들을 그분께서 신들이라 하셨으며 또 성경 기록은 깨뜨리지 못할진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재창조된 성도들은 신과 같이되죠. 우리가 거듭나게 되면 영과 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뀌지만 육신에는 죄가 그대로 있기 때문에 아담의 형상대로 있지만 속에있는 영과 혼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7:2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시매 그분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그분의 옷이 빛같이 희게 되었더라.
계시록 1:16 그분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이 있으며 그분의 입에서는 양날 달린 날카로운 검이 나오고 그분의 용모는 해가 세차게 빛나는 것 같더라.
히 1:3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 자체의 정확한 형상이시며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떠받치시는 이 아들께서는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하게 하신 뒤에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고린도후서 4:4 그들 속에서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빌립보서 3:21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때 사용하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만드시리라.
하나님의 형상을 입게 되면 몸에서 빛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더 할것이 없이 영광스럽게 되는 겁니다.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현재 죄 있는 육신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는 빛이 안 나옵니다. 죄의 몸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 때 우리는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데 부활한 몸에는 죄의 피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영광스런 형상과 같이 되어 몸에서 빛을 발산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입게 될 영광스런 모습으로 흰옷을 입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형용할 수 없는 강한 빛으로 옷 입고 있는 상태입니다.
모든 색깔의 빛을 함께 섞으면 흰색이 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물감을 섞으면 검정색이 되죠.
즉 하늘에 있는 것은 영광의 빛이지만, 땅의 것들을 어둠과 죄와 죽음이죠.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시잖아요, 예수님께서 영광 속에서 재림하실 때의 모습을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에게 한번 보여 주셨죠.
뱀이 에덴동산에서 여자를 찾아 왔을 때 아담과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상태이기 때문에 빛의 옷을 입고 있었고, 뱀도 가장(변장)을 해서 빛으로 옷 입은 상태로 여자 앞에 나타나 여자의 경계심을 없애고 속일 수 있었겠죠.
고린도후서 11:3 그러나 뱀이 자기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 같이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부패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
고린도후서 11:14 그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니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느니라. 15 그러므로 그의 사역자들 또한 의의 사역자로 가장한다 하여도 그것은 결코 큰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들의 행위대로 되리라.
뱀이 여자(이브)를 속일 때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변장)한 것을 알수 있습니다.
뱀은 여자(이브)를 속이는데 일단 외모를 같은 모습으로 변장을 했다는 얘깁니다.
사탄의 본 모습은 창세기3장 이전에 이미 타락을 해서 죄를 지은 상태이기 때문에 악의 화신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사탄은 하늘나라에서 쫓겨났고 하나님 보좌를 덮는 그룹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했어요.
여자에게 말을 건 뱀의 첫 마디는 “Yes (긍정적 대답)”입니다. 이것은 벌써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사탄은 긍정적 표현으로 대화를 시작하는데, 모든 속임수의 시작은 긍정적인 표현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탄은 음흉하고 꾀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귀를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뱀은 어떤 형태로든지 모든 사람에게 이와 같은 방식으로 치고 들어오는 거에요.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행하려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자기 속에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의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예수님께서 직접 사탄을 처음부터(에덴동산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전 인류를 대상으로 살인사건을 저지르는 살인마 범인임을 말씀하시면서 거짓말의 시조라고 하셨습니다.
사탄은 첫 공격 목표로 최초의 여자의 마음을 선택했어요.
사탄은 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사탄은 우선 여자의 마음속에 의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의심이야말로 사랑을 파괴하는 핵심이니까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의심을 가지게 만드는 거에요.
진짜 그럴까, 안 그럴까? 항상 5:5의 확율로 만드는 거에요.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해 믿음이 5:5인 사람은 불신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창세기 2:16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자의 말은
창세기 3:2 여자가 뱀에게 이르되, 우리가 동산의 (모든)나무들의 열매는 (마음대로, freely) 먹어도 되나 3 동산의 한가운데 있는 (선과 악을 알게하는)나무의 열매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반드시)죽을까 (lest you die) 염려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매
뱀의 질문에 여자는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마음이 흔들리면서 횡설수설하고 있는 모습으로 무엇인가에 취한듯한 몽롱한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범죄의 시작은 주님께 대한 불만과 의심 및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모르는 데서 비롯됨을 봅니다. (삭제, 추가, 변개)
그들은 씨 가진 열매있는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고, 동산의 한가운데 있는 두 나무 중에서 오직 “선 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것만 못 먹게 하셨습니다.
“만지지도 말라”는 것은 여자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밭을 황폐하게 만드는 죄를 짓게하는 요소들은 손으로 치워 버려야하는데, 반대로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만지는 것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반드시 죽는다 (You shall surely die)”를 “죽을까(Lest you die)”로 말했습니다.
이것은 “죽을지 안 죽을지 잘 모르겠다”는 뜻으로 결국 여자는 뱀의 의도대로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고 부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시지만,
“아니 그래도 육신이 있는 이상 먹고 살아야지 내 몸이 있는데”하고 5:5로 만들어 버려요. 그렇게 합리화시켜 버리지요.
이렇게 세상과 짝하며 사는 것을 불결하다고 하죠. 반대는 뭡니까? 순결함이잖아요.
비둘기는 순결하잖아요 왜 순결해요? 비둘기는 한 곳 밖에 못 봐요. 눈이 두 개잖아요. 두 눈의 초점이 한 곳 밖에 안보여요. 절대 동시에 두 개를 못 봐요. 그런데 까마귀가 불결한 이유는 동시에 여러 개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대로 먹도록 하셨습니다. 즉 자유의지를 준 거예요.
동산의 가운데는 두 나무 즉 “생명나무”와 “선 과 악을 알게하는(지식) 나무”가 있었는데, 여자의 마음에는 생명나무에 대한 생각을 볼 수 없어요.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여자는 벌써 회의주의자(모든 것을 5:5로 해석하는 사람)가 돼 버렸어요.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버렸어요.
창세기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you shall surely die”하셨고, 사탄은 “you shall not surely die”라 했는데, 하나님과 반대로 여자의 의심하는 마음에 쐐기를 박는 말을 햬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선악나무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셨는데,
뱀은 “반드시 죽는 것은 아니고, 신들과 같이 되어서 선악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
Gen 3:5 For God does know that in the day you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ou shall be as gods, knowing good and evil.
여기 사탄의 말에는 “신이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신이 되면 갖게되는 여러 능력들과 함께 “선 과 악도 함께 알게 된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22절에 “become as one of us, to know good and evil” 즉 “선과 악을 아는 것에 대해서만 신처럼 된다”는 것으로 엄청난 차이에요. 이런 것이 사탄의 간교함 입니다.
이렇게 교묘하게 별 차이 없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굉장한 차이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탄은 완전한 신이 될 수 있다고 속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선과 악만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선과 악의 두 마음(양심)만 생겨 평생 죄악 가운데서 살 수 밖에 없는 타락한 인생이 된 것이죠.
사탄은 지금도 유혹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스스로 신들과 같이 될 수 있다”
선악과를 먹은 후 타락한 아담의 형상과 현재 우리들의 형상은 동일합니다.
창세기 5:3 ¶ 아담이 백삼십 년을 살며 자기 모양대로 자기 형상에 따라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더라.
“당신은” 신입니까?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
창세기 3:6 여자가 보니 그 나무가 먹기에 좋고 눈으로 보기에 아름다우며 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이므로 그녀가 그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한 자기 남편에게도 주매 그가 먹으니라.
선악나무가 동산의 다른 나무와 다른 점은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후 사람에게 생긴 모든 문제의 근본 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를 어떻게 만드셨어요?
창세기 2:9 또 주 하나님께서 땅으로부터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모든 나무가 자라게 하시니 그 동산의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동산의 모든 나무는 “먹기에 좋고 보기에 아름다운” 특징을 가졌는데 선악나무의 열매는 “지혜”가 추가가 됐죠. 웬 지혜!
여자가 선악과를 먹은 이유는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뭔지 정확하게 모르면 창세기 3장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산의 모든 나무를 만드실 때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특징은 넣지를 않으셨는데, 지금 여자가 보고 있는 선악나무의 열매는 “지혜”를 줄 것 같이 보였죠.
이 열매는 스스로 신과 같은 능력을 갖기를 원하는 여자의 마음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지혜를 가지기를 원하고 있는데, 그렇게 사탄은 속인다고요.
성경에서 지혜가 450번 정도가 나옵니다. 심지어 잠언3장, 전도서 7장, 8장 및 고린도전서 1장, 2장은 지혜가 참 많이 나옵니다.
그 만큼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혜가 뭐지? 그럼 명철은 뭐죠?
잠언 3:19 주께서는 지혜로 땅의 기초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출애굽기에서 성막을 만들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면 무엇이든지 다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나와있어요.
출애굽기 31:6 또, 보라, 내가 그와 함께 단 지파에 속한 아히사막의 아들 아홀리압을 주었고 지혜로운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의 마음에 지혜를 주어 그들이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을 만들게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 우리들 피조물이잖아요.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 만들어진 거에요. 자고로 신이 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지식은 아는 것이지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가 안다고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선악과를 먹고 “선과 악에 대한 지식”만 가지게 되었습니다.
경제학교수라고 주식을 잘하는 것이 아니듯, 산부인과의사라고 애기를 잘 낳는 것이 아니죠.
“지식과 지혜”의 차이, 만물박사가 깡통 찬다.
지혜는 또 세상의 지혜냐? 사람의 지혜냐? 하나님의 지혜냐에 따라 다릅니다.
하나님 말씀을 교묘히 바꿔서 “너희들이 신과 같이 되어”를 앞에 수식어로 붙이면서
하나님은 become 했는데 뱀은 shall.
창3:5절에서 뱀은 “you shall be as gods, knowing good and evil.”
창3:22절은 하나님 말씀이에요.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to know good and evil:”
모든 면에서 신처럼 되려다가 선과 악을 함께 아는 것에서만 신처럼 되어(양심이 생겨) 사람이 동물과 같은 반열로 추락해버렸습니다.
여자가 갖고싶어 했던 지혜와 행복은 어디 있었어요? 바로 생명나무에 있었던 거에요.
이 생명나무가 바로 참 지혜에요.
잠언 3:17 지혜의 길들은 즐거운 길이요, 지혜의 모든 행로는 화평이니라. 18 지혜는 그것을 붙잡는 자들에게 생명나무니 그것을 간직하는 자는 다 행복하도다.
이때 벌써 여자는 생명나무에서 마음이 떠났고, 부패한 세상의 지혜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참 지혜와 참 행복이 옆에 있었는데 그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한눈을 팔고 있습니다.
지금도 참 지혜와 참 행복을 주시는 생명나무와 죄와 죽음을 가져다 주는 선악나무가 우리 앞에 놓여 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예수님과 세상이 우리 앞에 놓여 있어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요. 우리는 자유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여자의 마음처럼 그렇지 않습니까?
여자를 탓할게 못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도 창세기의 여자와 동일한 상황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느냐? 우리 모두 자신의 결정 여하에 달렸습니다.
성경에서는 지혜를 구해라. 내가 지혜이지 않느냐? 나에게 구하라. 내가 행복이지 않느냐?
내가 참 지혜와 행복을 주시겠다. 계속 외치고 계십니다
출애굽기 35:35 마음의 지혜로 그들을 충만하게 하사 온갖 종류의 일을 하게 하시되
이사야 11:2 주의 영 곧 지혜와 명철의 영이요, 계략과 능력의 영이요, 지식과 주의 두려움의 영께서 그 위에 머무시며 3 그로 하여금 주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속히 깨닫게 하시리니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책망하지 아니하며
롬마서 16:27 곧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이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오직 하나님께서 지혜로우시며, 하나님께만 지혜가 있으시다. 그래서 하나님께만 있는 그 지혜를 우리가 구하고 또한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의 영이 내 안에 계시면 나는 매사에 “내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내 귀에 들리는 대로 책망하지 아니하게 되며” 즉 내 마음(양심)대로 행동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살 수 있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24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그리스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라.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Energy 혹은 Power)의 완결판이시다.
에스겔 28:12 사람의 아들아, 두로의 왕에게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지혜가 충만하며 아름다움이 완전하여 모든 것을 봉인하는 자로다.
에스겔 28:17 네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네 마음이 높아졌으며 네 광채로 인하여 네가 네 지혜를 부패시켰은즉 내가 너를 땅에 던지고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이 너를 바라보게 하리라.
또 부패한 지혜가 나와요. 사탄의 지혜는 부패했어요.
부패한 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부패한 지혜를 사용하는 곳에는 죽음만을 만들 뿐입니다. 사탄은 이 부패한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든 사람을 멸망으로 데려가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18절에서 2장끝까지 읽어 보시면 지혜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1:22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하나
그리스어로 지혜가 소피아(sophia)입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을 소피스트라 하죠.
그 철학자들이 지혜를 구했어요. 지혜는 곧 능력이기 때문이죠.
그리스 신화에는 수 많은 신들의 이야기가 나오죠.
그 신들이 바람과 파도를 일으키고, 비도 오게 하고, 많은 능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브는 하나님 말씀보다 뱀의 말을 더 믿었고, 아담은 아내의 말을 하나님 말씀보다 더 경청하고 믿었다, 이게 핵심문제예요.
결국은 믿음의 문제이며,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사탄 자신이 앉으려는 그의 음모와 계략에 대한 우리 마음 자세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했는데, 아담은 930년을 더 살았어요.
아담이 죽기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먼저 죽었는데, 가장 먼저 죽은 사람은 아벨이죠.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행하려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자기 속에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의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에베소서 2:1 또 그분께서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여기에 보면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은 죽어있는 상태에서 다시 살아났는데, 그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죽지도 살아나지도 않았습니다. 여기서는 “사람의 영과 혼”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창세기2장, 3장에서 말씀하신 죽음은 영적인 죽음과 육체의 죽음 둘 다 적용됩니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 영적으로는 바로 죽었으며, 나중에 육체도 죽습니다.
요8:44의 살인은 에덴동산의 사건을 말하고 있으며, 처음부터 살인자는 마귀 곧 사탄, 뱀입니다. 이 뱀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 인류를 죽여왔습니다.
요8:44 말씀에서 살인사건은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뱀과 아담 및 그 모든 후손에 대한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모두도 포함됩니다.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은 사람의 영속에 계시던 하나님의 영이 떠난 상태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영적으로 죽었을 때 처음 일어난 현상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는데, 입고 있던 옷을 잃어버려 벌거숭이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7 그들 두 사람의 눈이 열리매 그들이 자기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고는 무화과나무 잎을 함께 엮어 자기들을 위해 앞치마를 만들었더라.
하나님의 영과 옷은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시편 104:2 그분께서 옷으로 덮는 것 같이 빛으로 자신을 덮으시며 하늘들을 휘장같이 펼치시고
마가복음 9:3 그분의 옷이 빛나며 땅 위의 어떤 세탁공도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눈처럼 매우 희게 되었더라.
사도행전 10: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에 이 시간까지 금식하고 아홉시에 내 집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보라, 한 남자가 빛나는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로마서 13:12 밤이 많이 지나고 낮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
하나님의 영을 가지게 되면 빛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옷은 누가 벗겼어요? 그 벗은 것을 누가 가르쳐 주었습니까?
창세기 3:7 그들 두 사람의 눈이 열리매 그들이 자기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고는 무화과나무 잎을 함께 엮어 자기들을 위해 앞치마를 만들었더라. 8 그들이 그 날 서늘한 때에 동산에서 거니시는 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주 하나님 앞을 떠나 동산의 나무들 가운데 숨으매 9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니 10 그가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벌거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거늘 11 그분께서 이르시되, 네가 벌거벗은 것을 누가 네게 알려 주었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먹었느냐? 하시니
몇일 전 뉴스에서 강원도 어디에 나체촌을 만들어서 거기에 들어가면 모두 나체로 사는 마을이 있는데, 인기가 많다고 해요. 옆 동네 주민이 신고를 해서 결국엔 경찰서에서 폐쇄해서 못하긴 했지만 외국의 어느 장소는 합법적으로 나체족을 허용해요.
요즘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학생들 보세요
입고 싶은 것인지, 벗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어요. 벗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옷을 잃어버리기 전 아담과 이브는 상상도 못했겠죠?
선악과를 먹은 후 빛의 옷이 없어져 버렸어요. 매우 두렵고 당황했겠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벌거벗은 것을 누가 네게 알려 주었느냐?” 물어보셨는데 아담은 대답을 못합니다. 왜일까요? 내가 나에게 알려주었다라고 하면 올바른 대답일까요?
사실은 양심이 나에게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벗은 상태는 부끄러우니까 치마를 해 입었죠.
양심의 가책으로 부끄러움을 느껴서 나를 포장(위장, 위선)하는 것을 우리는 종교행위라 하죠.
지혜에 대해 배웠는데, 지혜는 사람이 신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죠.
우리는 학문을 통해 지혜를 얻는 것을 철학이라 하고, 행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서양은 그리스사상이 철학으로 발전해서 현재에 이르고, 동양은 종교로 발전한 것입니다.
인류의 첫 조상은 지혜를 얻기 위해 선악과를 먹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에 만족을 못하고 지혜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대등한 위치에 서고자 하는 마음에서 먹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반역인 것입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즉 옛 왕조시대 때에 반역을 일으키면 어떻게 되죠?
그 죄가 얼마나 대역죄인지 9족을 멸해요. 다른 죄는 도둑질하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이런 죄들은 죄를 지은 개인에게만 죄를 물었는데 반해서 반역죄는 그와 관련된 사람뿐만 아니라 어린이나 노인이나 할 것 없이 가족들 전체를 다 죽였잖아요. 그만큼 반역죄는 엄격하게 다스렸죠.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무슨 죄를 저질렀어요? 반역죄를 저지른 거예요.
여호수아 22:18 그런데 너희가 이 날 주를 따르는 일에서 돌이켜서 너희가 오늘 주께 반역하면 내일 그분께서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
하나님께 대한 반역죄는 주님을 따르는데서 돌이키면 반역이고, 다른 길로 가버려도 반역이래요
우리가 생각하는 반역은 전쟁을 하고 대항해서 싸우는 것을 반역이라 하지만
에스겔 20:7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각각 자기 눈의 가증한 것들을 버리고 이집트의 우상들로 너희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 하였노라. 8 그러나 그들이 내게 반역하여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들이 각각 자기 눈의 가증한 것들을 버리지 아니하고 이집트의 우상들을 버리지도 아니하였으므로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이집트 땅 한가운데서 그들에게 내 격노를 부으며 그들에게 내 분노를 이루리라, 하였노라.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눈의 가증한 것들을 버리지 아니하고, 우상들을 버리지 않고 우상을 따르는 것을 반역한 것이라 말씀하세요.
하나님보다 세상에 있는 것들(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 등) 예를들면 돈, 명예, 지위, 학벌 등을 더 추구하고 섬기는 것과, 하나님 말씀보다 세상의 것들과 사람의 말을 더 믿는 것,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더 섬기는 것 등을 반역죄에 해당하는 거라고 하십니다.
나는 과연 얼마만큼 하나님께 대해서 반역죄를 지었는가 생각해 봐야 해요.
아담과 이브는 결국 사탄의 말을 듣고 반역을 저질렀고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로마서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
이 말씀의 핵심 주제는 “내가 왜 죄인으로 태어났느냐?”에 대한 답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은 조금 억울하지 않나요?
내가 원한 것도 아니고,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내가 죄인으로 태어나야 하는 건가?
제가 여러분에게 한가지 질문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부모님에게서 태어날 때 여러분이 계획을 했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원했습니까,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겁니까?
사실 나와는 아무 상관없이 태어난 거죠. 생일, 국적, 부모, 본적, 외모 등등
우리들의 조상이 있으니까 지금의 내가 있듯 첫 조상 아담과 이브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존재하는 거죠.
아담의 피 속에 사탄의 악이 들어있었고, 그 피를 이어받아 우리 모두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악인이 되어 모두가 사망의 상태에 빠진 채로 태어납니다. 이 악은 실체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51:5 보소서, 내가 불법 가운데서 형성되었으며 내 어머니가 죄 가운데서 나를 수태하였나이다.
다윗왕의 이 절규가 나의 간증이 되어야 해요.
욥 3:3 내가 태어난 그 낮과 사람들이, 사내아이를 수태하였다, 하던 그 밤이 소멸되었더라면,
욥 3:10 이는 그 밤이 내 어머니 태의 문들을 닫지 아니하고 내 눈에서 내 슬픔을 숨기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로다.
욥도 자기의 수태하고, 태어난 날들에 대해 원망(저주)을 하고 있죠.
이스라엘 남자들은 성인이 되면 할례를 하는데, 그 씨에 문제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 씨가 할례 받는 그 부분을 타고 들어오니까 거기를 피로 적시는 거에요.
이방인은 그것 조차도 없죠. 그래서 우리가 죄 가운데서 잉태되어 온 거에요.
롬5:12 후반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죄가 피를 타고 유전된 건 알았는데, 이건 유전된 죄를 이야기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실제로 지은 죄에요. 유전된 죄는 sin 단수로써 원죄 혹은 죄성, 본성이라 하며, 내가 지은 죄는 명사로 sins, 동사형으로 하면 sinned, 이것을 범죄라고 하는 겁니다.
영어성경에서는 원죄와 범죄가 뚜렷이 구분되지만, 한글성경에서는 구분이 어렵게 되어있습니다. 선악나무가 심긴 상태가 원죄(죄 : sin)를 가지게 된 상태이고, 그 선악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은 것이 범죄(죄들 : sins)들 입니다. 범죄는 내 자신이 저지런 것이며 내 것입니다. 이 둘은 구분을 해서 읽어야 합니다.
죄를 이야기 할 때 원죄만 생각하면 내가 실제로 죄인인 것에 대해 흐릿해 지면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억울한 마음이 생길 수 있고, 죄의 열매만 생각하면 내 죄의 본성에 대해 흐릿하게 되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 반발하게 되어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여겨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대해 무관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열매를 보는 이유는 나무를 봐라. 그래서 율법은 지켜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아 나는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어쩔수 없는 죄인입니다”
이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 율법을 주신 겁니다.
이 죄성을 제거하는 일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내 속에 심긴 선악나무가 뽑혀야 되는데 문제는 내가 죽어 피를 다 흘려야 선악나무도 뽑히는데 죄가 있는 상태에서 죽으면 바로 지옥으로 가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는 거지요.
선악나무의 뿌리를 뽑아버리는 일을 자신의 종교생활이나 선한 삶 속에서 이루어 보려고 발버둥 치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나, 선하게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삶은 그것이 인생의 종착역(궁극적 목표)이 아니라 믿음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로마서 5: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법과 같은 종류의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군림하였는데 아담은 오셔야 할 분의 모형이니라.
12절과 14절 말씀은 서로 연결되는 말씀인데, 왜 아담에서 모세까지 일까요?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양심시대로 양심의 법에 따라 살았고, 모세 이후는 율법시대로 율법에 따라 살았다는 겁니다.
율법시대에서는 율법에 의해서 정확하게 죄가 판단 되잖아요.
율법이 있기 전에는 이 죄를 판단 할 수 있는 기준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죄의 판단 기준이 없다면 죄를 지어도 죄가 죄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말씀이 로마서1장에 나와 있어요.
그렇지만 아담으로 인해 전 인류는 죄악의 상태에 빠졌고 결국은 지옥의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담 이외의 사람들은 선악과를 직접 먹지 않았는데도 다 죽었는데, 그 이유는 선악과에 들어 있었던 뱀(사탄)의 죽음의 독이 아담의 피를 타고 유전되기 때문이다.
신명기 24:16 자녀들로 인하여 아버지들을 죽이지 말며 아버지들로 인하여 자녀들을 죽이지 말라. 각 사람은 자기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문제의 원인은 아담이 제공했지만 아담의 범죄 때문에 그 후손들이 죽는 것은 아닙니다.
아담은 단지 인간 세상에 죄(원죄)가 유입되는 통로로 쓰였고, 내 마음 밭에 심긴 악한 양심(마음) 때문에 결국은 범죄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이 된다는 겁니다.
불법을 행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지만 죄성을 가진 사람 속에는 참 지혜가 없고, 다만 선과 악에 대한 지식만 있는 상태, 즉 지혜 없는 양심 혹은 능력 없는 양심만 있게 된 것이 문제입니다.
악한 양심(마음)이 뭐냐?
신명기 32:32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니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 포도니 그들의 송이는 쓰며 33 그들의 포도주는 용들의 독이요, 독사들의 지독한 독이니라.
이 지독한 독이 혈통을 타고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을 죽이고 있습니다.
창세기 3:7 그들 두 사람의 눈이 열리매 그들이 자기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고는 무화과나무 잎을 함께 엮어 자기들을 위해 앞치마를 만들었더라.
선악과를 먹은 두 사람은 엉뚱하게도 “세상을 향해서는 눈이 열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눈이 감긴” 장님이 되어버렸습니다.
선악과는 무엇을 알게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는데, 두 사람이 먹은 후 벗은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지식은 시각이나 청각을 통해 얻게 됩니다. 세상에 대한 지식의 시각이 열린 것입니다. 그 지식의 시각이 닫혀있다면 죄가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을 만나 은혜를 받은 많은 소경과 귀머거리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서 소경이며 귀머거리인 것을 깨닿고 그것을 열어 주실 것을 소망한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9:4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눈멀었다면 너희에게 죄가 없으려니와 지금 너희가, 우리는 본다, 하고 말하므로 너희 죄가 남아 있느니라.
선악과를 먹은 후 빛의 옷을 잃어버려 벌거벗은 상태를 발견하고 양심이 작동해서 부끄럼을 느끼고 그것을 가리기 위해 스스로 행동했습니다.
참고로 무화과나무 잎은 좀 까칠하고 잎사귀가 크기는 하지만 사이가 벌어져있어 맨몸을 가리기에는 적절치 못하고 불편만 가중되었을 것입니다. 한번 해 입어 보세요.
잎 한 개로는 부족해서 여러 개를 함께 엮어야 됩니다.
그리고 날이 좋은 날에는 하루에도 두 세 번은 갈아 입어야 할 것입니다.
이 나뭇잎 옷으로는 몸을 제대로 가릴 수 없는 것이죠.
종교행위도 그 모양이 여러 가지죠.
무화과나무는 종교를 상징합니다.
종교의 본질은 자신의 관점에서는 최선의 지혜로운 선택으로 보이겠지만 결국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치마에 불과합니다.
종교는 항상 불편하고 힘들지만 우리에게 만족과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끝이 없습니다.
종교행위는 선악과를 먹은 후 생긴 “선과 악을 아는 지식 (양심 Conscience)”이 사람의 마음속에 심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은 감기고, 자신과 세상만을 볼 수 있는 육적인 눈이 열린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이후의 변화 중 하나는 자기를 보게 되는 것인데, 악을 모를 때는 자기가 안보여요. 어린 애기들은 자기를 안 봐요. 그런데 커 가면서 철이 들기 시작하면 자신을 인식하게 되고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숨기고 속이기도 하면서 죄 열매를 만들어요.
고린도후서 4:4 그들 속에서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이 세상의 신은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인 뱀 입니다. 뱀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먹게해서 자기가 이 세상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영광스런 복음의 빛이시다.
시편 104:1 오 내 혼아, 주를 찬송하라. 오 주 내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위엄으로 옷 입으셨나이다. 2 그분께서 옷으로 덮는 것 같이 빛으로 자신을 덮으시며 하늘들을 휘장같이 펼치시고
하나님께서는 빛의 옷을 입고 계신다.
계시록 1:16 그분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이 있으며 그분의 입에서는 양날 달린 날카로운 검이 나오고 그분의 용모는 해가 세차게 빛나는 것 같더라.
마 17:2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시매 그분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그분의 옷이 빛같이 희게 되었더라.
땅의 성도들도 부활 때는 주님의 영광스런 형상으로 변화를 받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3:18 그러나 우리는 다 가리지 않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렀나니 이것은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우리는 주님의 영을 받게 되면 주님과 같은 영광스런 모습으로 바뀌어 빛의 옷을 입게 됩니다.
사람 마음에 악이 들어오기 전까지 사람의 주인은 하나님이셨고, 사람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명철로 판단하고 행동했습니다. 그것이 창세기1장의 매우 좋은(선한) 상태인 것입니다.
그런데 악이 들어오면서 어떻게 됐어요? 선과 악, 두 마음 사이에서 내 스스로 판단하고 살게 된거죠. 즉 양심의 판단과 명령대로 살게 된 것은 바로 그 양심이 나의 주인이 된 겁니다.
우리는 양심을 자기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담과 이브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때는 양심(악한 마음)이 없었어요. 특히 사람은 매우 선하게(very good) 창조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후부터 인간은 양심의 종이 되었습니다.
양심은 누가 컨트롤 해요? 사탄이에요. 양심은 그냥 좋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악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선에 대한 지식을 악에 대한 지식과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을 행하려 노력하죠.
내가 배우고 경험에서 터득한 지혜, 즉 나의 지혜, 사람의 지혜를 가지고 내 스스로 선한 행위를 하면서 살아 갈려 하죠. 이것이 “나의 믿음 나의 의”입니다.
하박국 2:4 보라, 위로 높여진 자의 혼은 그의 속에서 곧바르지 아니하나 오직 의인은 자기 믿음으로 살리라.
스스로 선하게 되려는 행위를 통해 신과 같이 되고자 하는 것이 종교에요.
종교는 사람의 수만큼 많을 수 있지만,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는 복음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복음은 내 안에 있는 것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모두 같아요.
인간 스스로 신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진정한 행복과 만족은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창조주의 품안에서만 가능합니다. (피노키오 이야기 참조)
하나님의 영께서 내 안에 오셔서 하나님의 품 안으로 인도하시면 나는 신이 되는 거예요. 이것이 진정한 복음이에요.
사람이 가진 지혜로 만든 첫 예술 작품이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앞치마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서 가장 먼저 만든 작품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 때와 동일하게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현재 인류의 진보가 엄청난 것 같지만 사실 모두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치마에 불과합니다. 달이나 화성, 목성 등 우주로 나가는 로켓이나, 컴퓨터, 휴대폰 등등, 본질을 따져보면 모두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치마입니다.
돈이 나를 부끄러움으로부터 가려주고, 완전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처럼 착각을 하도록 유혹하죠. 신처럼 만들어 줄 것 같잖아요. 훌륭하게 만들어 줄 것 같잖아요. 그렇지만 결국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치마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은 왜 주신 것 같읍니까?
인생 살면서 마음속이 불편하라고 주신 거에요. 그런데도 율법에 매인 생활을 하면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것이 보람되고 인간적인 면모에서 우월감, 성취감을 느낀다면 하나님께서도 포기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이사야 64:4 오 하나님이여,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다리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을 주 외에는 사람들이 듣지 못하였고 귀로 깨닫지도 못하였으며 눈이 본 적도 없나이다. 5 주께서는 기뻐하며 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들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만나시거늘, 보소서, 우리가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나 주의 길들이 지속되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으리이다. 6 그러나 우리는 다 부정한 물건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불법들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갔나이다.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도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주의 얼굴을 우리에게 숨기셨으며 우리의 불법들로 인하여 우리를 소멸시키셨기 때문이니이다.
우리의 의가 뭐라고요? 인간들 보기에 비단천 같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더러운 누더기, 넝마입니다. 그래서 화가인 렘브란트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를 그렸잖아요.
신발 한 짝은 없고, 한 짝은 신기는 했지만 발이 다 들어 날 정도로 낡았고, 옷은 거지중의 상거지 차림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비단옷 아무리 걸치고 꾸며도 서울역 지하도에서 만나는 노숙자보다 더 더러워요.
이사야 59:6 그들의 거미줄은 옷이 되지 못하고 그들이 자기 행위로 자기를 가리지 못하리니 그들의 행위는 불법의 행위이며 그들의 손에는 난폭한 행동이 있고
종교나 철학, 윤리 도덕으로는 절대로 자신을 가릴 수 없어요. 종교나 철학과 윤리 도덕은 인간 내면의 양심의 작용에 기초한 것들입니다.
자기 행위로서 자기를 가리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도 지옥의 판결을 벗어날 수 없어요.
이사야서 59장을 한번 읽어 보십시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 너무나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계십니다.
스가랴 3:4 그분께서 자기 앞에 서 있던 자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그에게서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네 불법을 네게서 떠나게 하였으니 이제 의복을 바꾸어 네게 입히리라, 하시기에
이사야 61:10 내가 주를 크게 기뻐하며 내 혼이 내 하나님을 기뻐하리니 이는 마치 신랑이 장식으로 자기를 꾸미고 신부가 보석으로 자기를 단장하는 것 같이 그분께서 구원의 옷으로 나를 입히시고 의의 겉옷으로 나를 덮으셨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길 소원하고 계십니다.
나는 무덤덤한데 하나님께서 마음이 타고 계십니다.
창세기 3:8 그들이 그 날 서늘한 때에 동산에서 거니시는 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주 하나님 앞을 떠나 동산의 나무들 가운데 숨으매 9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니 10 그가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벌거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거늘 11 그분께서 이르시되, 네가 벌거벗은 것을 누가 네게 알려 주었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먹었느냐? 하시니
“그 날 서늘한 때에” 왜 서늘해요? (영어성경에는 cool) 옷을 벗었으니까 당연히 춥죠.
하나님께서는 옷을 잃어버린 것을 아시고 부르고 계십니다. 지금도 똑 같이 우리를 부르고 계세요. 그런데 어떻게 해요? 아담과 이브는 도망가서 나무들 사이에 숨어 버렸어요. 이게 죄인의 속성이에요. 우리도 죄 지으면 어떻게 하죠? 우선 도망가서 숨습니다.
어디에 숨어요? 동산의 나무들 가운데 숨어요. 나무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 속에 있으면 안전한 것 같죠. 요즘 사람들은 큰 단체를 좋아합니다.
많은 사람이 가는 곳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십니다.
첫째로 “벗은 것을 누가 네게 알려 주었느냐?”
두 번째로 “네가 먹었느냐?”
아담은 한 가지 밖에 대답을 못했는데 그것도 핑계를 대요.
첫 번째 질문 “벗은 것을 누가 네게 알려 주었느냐?” 에 대해서는 대답을 못해요.
만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신다면 대답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기 등장인물은 아담 자신과 이브 및 사탄 뿐 입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themselves”로 나옵니다. 그들 스스로 벗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아담 마음속의 양심이 가르쳐준 것입니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와 비슷하죠. 천사는 동양에서는 여자이지만, 성경에서는 모두 남자입니다.
천상에서 선녀가 땅에 내려와 목욕을 하는 사이에 나무꾼이 옷을 숨겼죠. 옷을 잃어 버렸습니다. 목욕하는데 온 정신이 팔려 버린 거죠. 그래서 죄를 지은 거잖아요. 그래서 사람의 아내가 되어요. 천사하고 사람이 짝을 맺는데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 있죠.
창세기 6장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나오죠.
빛의 옷을 잃어버려 벌거숭이가 된 아담과 이브는 또 뭘 잃어 버렸어요?
하나님의 영 즉 생명의 빛을 잃어버림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도 함께 잃어 버렸어요.
누가복음 10:30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나매 그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그에게 상처를 입혀 그를 반쯤 죽이고 떠나갔느니라.
여기 강도만나 옷을 빼앗긴 사람은 아담을 포함한 아담의 모든 세대들입니다.
당연히 그 강도는 사탄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런 처지에 빠진 사람을 영광스런 주님의 모습으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찾아오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서 죄 범한 영혼 구하시려 직접 찾아오셨어요.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에 계시면 사람의 능력으로는 찾을 수 없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의 땅에 오신 거예요. 그렇게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야고보서 4:7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
하나님의 영이 내 마음에 오시려면 내 속에 있는 마귀를 쫓아 내야 합니다.
마귀를 물리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안됩니다. 100% 마귀의 밥이 됩니다.
내 힘 쓰지 마세요. 그것은 종교입니다.
잠언 28:1 사악한 자들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로운 자들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다시 창세기3장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3:12 남자가 이르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있으라고 주신 여자 곧 그녀가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었느냐?” 질문하셨는데, 아담은 핑계를 찾아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 합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여자를 주셔서 문제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죠.
창세기 3:13 주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행한 이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니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속이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니라.
남자는 여자와 하나님 핑계를 댔고, 여자는 뱀에게 핑계를 댔습니다.
두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는데, 남자는 여자의 말을 들었고 여자는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선악과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그 후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면서 인간 최초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따라 오는데, 첫 번째 뱀에게 심판을 하세요. 두 번째 여자에게 심판을 하시고, 세 번째 남자한테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나 뱀에게는 질문하지 않으십니다. 여자와 남자에게는 질문을 하셨잖아요.
뱀은 그 전에 창세기1장2절에서 한번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질문이 필요 없어요.
그 자체가 사악한 존재이기 때문에 질문이 필요 없어요. 그는 가장 간교한 존재라고 정의를 내려놨잖아요. 사탄에 대해 다 알고 계신 거죠.
이 심판 때문에 창세기 4장 이후 요한계시록 22장까지 여러 형태의 역사가 전개됩니다.
에덴동산 심판의 결과로 모든 피조세계에 사망의 저주가 내려졌지만, 완전한 회복을 이루실 그리스도의 사역이 최종적으로 완성될 때까지 “너의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는 전쟁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14 주 하나님께서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일을 행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평생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니 그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 뱀은 가축과 짐승처럼 네발로 걸어 다니는 존재였고, 이브에게 왔을 때는 빛의 천사로 변장을 하고 왔었다.
이 일후부터 뱀은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가기까지 평생토록 흙을 먹습니다.
이사야 65:25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수소처럼 짚을 먹으며 흙이 뱀의 양식이 되리니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그것들이 해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에덴동산에서부터 지금까지 뱀의 양식은 흙이고, 천년왕국 때에도 뱀의 양식은 흙입니다. 다른 동물들은 양식이 바뀌지만 뱀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 흙은 사람의 육신입니다. 사탄의 일은 사람을 사냥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여자는 이스라엘입니다. 여자의 씨인 예수님은 이스라엘로부터 나오십니다.
계시록 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았으니 이것은 그녀가 광야 곧 그녀의 처소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얼굴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양육 받게 하려 함이라.
뱀(사탄)의 씨는 적그리스도이며, 대표적으로 가인부터 시작해서 니므롯 등등 많은데 대표적인 존재가 가룟 유다, 그는 일반적인 인간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는 사탄의 씨로서 마귀 자체 입니다. 다음시간에 가룟유다가 왜 마귀인지 배울 텐데요, 가룟유다는 비밀스런 존재예요.
창3장15절 말씀처럼 뱀의 머리가 깨져서 완전히 멸망하는 날은 이 사건이 있고 7천년 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 말씀은 예언이거든요.
뱀이 여자의 씨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 사건은 이 말씀 후 4000년이 지나서 있었습니다.
그 사건은 골고다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창세기4장으로 넘어가면 가인과 아벨이 나오는데 가인도 사탄의 씨의 표본입니다.
요한일서 3:12 가인과 같이 되지 말라. 그는 저 사악한 자에게 속하여 자기 형제를 죽였는데 그가 무슨 이유로 그를 죽였느냐? 자기 행위는 악하되 자기 형제의 행위는 의로웠기 때문이라.
“사악한 자에게 속하여 (birthed from out)” 즉 가인은 사악한 자로부터 나왔다.
이 두 계보가 원수로써 7천년 간 전쟁을 하게 되는데, 목적은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6천년이 흘렀고, 앞으로 천년 동안 이 전쟁은 이어지며, 그 후 뱀 곧 사탄이며 마귀가 종말을 맞으면서 끝이 납니다.
왜냐하면 이 뱀은 사람을 먹고 살아야 되니까요.
그렇지만 사람의 영, 혼, 육의 진정한 주인이신 주님은 자기의 것을 도로 찾으셔야 되요.
창세기4장 이후 이방인과 유대인의 역사가 이어지고 신약에 가서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 그리고 교회의 완성과 7년 대환란, 천년왕국, 영원한 불못 심판까지 이 두 계보의 전쟁의 역사입니다.
창세기 3:16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고통과 수태를 크게 늘리리니 네가 고통 중에 자식을 낳을 것이요, 또 너의 열망이 네 남편에게 있겠고 그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에게 심판 하십니다.
“너의 열망”은 여자가 남편을 좌지우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겠지만, 오히려 남편이 너를 다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이와는 반대로 여성이 가정을 지배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농경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았죠
창세기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는 그것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하고 말한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고 너는 평생토록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으리라. 18 또한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네가 들의 채소를 먹으며 19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이는 네가 땅에서 취하여졌기 때문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여자는 고통 중에 자식을 낳게 되고, 남자는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게 됩니다.
아담은 아내의 말을 경청했어요. 이는 온 마음과 정신을 집중해서 아내의 말을 들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아내의 말을 따른 것이죠.
성경을 볼 때 항상 육적인 해석과 영적인 해석이 같이 가야 됩니다.
만일 여자가 고통 없이 자식을 낳는다면 자식을 사랑하며 키울 수 있을까요?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은 먹고 살기 위해 고통 속에서 땀을 흘려야 된다는 것은 육적인 것이며, 영적으로 땅은 사람이며, 땅의 소산은 자기자신의 노력으로 얻게 되는 모든 것 즉 사람의 지식, 지혜, 명철, 경험 등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땅이 내는 가시와 엉겅퀴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전쟁과 싸움, 모함, 속임, 착취 등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외적인 요소들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진정한 가시와 엉겅퀴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인 것이죠. 또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시와 엉겅퀴가 되는 겁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는 접촉하면 찌르고 할퀴죠, 아프고 피가 나죠, 우리가 살려고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내 속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와서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까지 할퀴고 상처를 주고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체적인 고통뿐이겠느냐?
아니죠 영적인 고통이 훨씬 더 큰 거예요. 우리의 모든 슬픔과 비통과 비참과 힘듦과 불행은 바로 우리들 속에 있는 가시덤불과 엉겅퀴 때문에 나오는 거예요.
타락한 이후 사람의 음식은 동산의 채소가 아니고 들의 채소입니다. (창1:29참조)
사람은 동산(garden)에서 살지만 짐승은 들(field)에 삽니다.
창3:1에 따르면 들에는 짐승들이 사는 곳으로, 들의 채소는 짐승들이 먹는 것입니다.
즉 타락한 인간은 들의 짐승들처럼 약육강식의 환경 속에서 서로 먹고 먹히며 살아가게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사람은 짐승과 같은 상태로 타락한 것입니다.
저주받은 우리의 육신은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시간이 지나면 일부는 흡수되겠지만 대부분 속에서 부패하여 악취를 만들며 결국 똥으로 나옵니다.
영혼의 양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 안에 있는 전 인류는 이러한 저주 속에서 태어나 결국 죽어 육신은 흙으로, 혼은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범죄하기 전에는 사람 안에 뭐가 있었나요? 하나님의 지식, 지혜, 명철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영)으로 채워져 있었지요. 하늘에 있는 것들은 부패하지도 쇄하지도 않습니다.
창세기 3:21 주 하나님께서 또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시니라.
처음에는 빛의 옷을 입고 있었고, 타락 후 무화과나무 잎을 입었다가 결국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해 입혀 주셨습니다.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물이 죽어 피를 흘려 가죽을 벗겨야 됩니다.
창세기 49:11 그가 자기의 어린 수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자기의 나귀 새끼를 좋은 포도나무에 매리니 그가 자기 옷을 포도즙에 빨며 자기 의복을 포도의 피에 빨았도다.
좋은 포도나무는 생명을 주는 포도나무입니다. 사망의 포도나무도 있었지요. (신32:32-33)
창세기 3:22 ¶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남자가 우리 중의 하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도다. 이제 그가 자기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 하시고 23 그런 까닭에 주 하나님께서 에덴의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사 그의 출처가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그분께서 그 남자를 쫓아내시고 에덴의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사방으로 도는 불타는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지혜가 없는 선악의 지식은 죄의 열매만 잔뜩 만들 뿐이므로 그 죄악 속에서 영원히 사는 것 자체가 불행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염려하시면서 육체의 죽음을 허락하십니다.
낙원에서 추방은 대책없이 하신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때 아담과 이브는 가죽옷을 입은 상태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보혈로 적셔진 옷을 입으면 부활의 능력을 입게 되기 때문에, 타락한 결과 양심을 통해 죄의 몸을 입게 된 우리에게 낙원 추방과 육체의 죽음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긍휼과 은혜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24절에 보면 생명나무의 길은 차단되었지만, 4천년 후 이 길은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열어 주셨어요. 그런데 이 길을 걷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신의 의지로 선택을 해야 되요. 생명나무이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계시록 2:7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 한가운데 있는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을 주어 먹게 하리라.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4000년 동안 막았던 생명나무의 길을 열어 주셔서 생명과를 먹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지금도 우리 앞에는 아담과 이브가 처했던 상황과 동일한 상황이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 앞에 생명나무와 선악나무가 함께 있으며, “선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악나무의 열매가 보암직하며 먹음직 하면서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습니까?
이브는 속았지만 지금은 말씀께서 밝히 보여주시지 않습니까?
생명나무의 길은 지금 여러분 앞에 완전히 오픈되어 있습니다. 그 길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어느 나무를 선택하겠습니까?
아직도 아담과 이브만 탓하고 있겠습니까?
이 영광의 길을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그 길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타는 갈증만이 생수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며, 영원히 솟아나와 나의 갈한 영혼을 적셔 주시는 그 샘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게 되겠죠.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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